집에 공기청정기가 있다는 사실은 묘한 안도감을 준다. 미세먼지 수치도 확인할 수 있고, 필터도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있으니 ‘공기만큼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집 안 공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재택으로 집에 오래 머무는 날이 늘어나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숨이 막힌다기보다는, 머리가 멍해지고 집중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었다. 공기청정기는 분명 작동 중이었고, 표시되는 수치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예민해졌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실내에만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잠깐은 괜찮다가 다시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느낌이 반복됐다. 그때 처음으로 “혹시 공기청정기만으로는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일부러 공기청정기를 켠 상태에서 창문을 잠깐 열어봤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정체돼 있던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그제야 공기청정기는 공기를 ‘정리’해 주는 도구이지, 공기를 ‘바꿔주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이후로 나는 공기청정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켜두기만 하면 안심했다면, 지금은 환기를 먼저 하고 그 다음에 공기청정기를 켠다. 순서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집에 오래 있어도 이전처럼 답답함이 쌓이지는 않는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영역과,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영역을 구분하게 됐다. 공기청정기는 분명 도움이 되지만, 창문을 여는 행위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걸 몸으로 배운 셈이다.